학술활동

서로 피곤한 VIP 신드롬(정성태 원장)


[Doctor"s Essay]

서로 피곤한 "VIP 신드롬"

피부과 전문의 정성태

무슨 "신드롬"하면...
골치 아프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의사들 사이에서 말하는 "VIP신드롬"은 그런 점에서 일반적인 신드롬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흔히 VIP들, 가족 혹은 친척 사회적인 유명인사들, 스승이나 선배들...
이런 분들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진료나 시술, 수술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손이 더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런 VIP환자들의 경우, 거의 없는 부작용의 증후가 나타나기도 하고 후유증이 남아 입장이 난처한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런 경우를 "VIP"신드롬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몇 해 전.. 30대 초반에 앞머리가 빠진 동생이 진료실 문고 불쑥 들어섰다..
집에서 만날 때는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막상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의 입장으로 만나다 보니 동생의 상태가 그리 경미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순간, 형으로서 아니 의사로서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수술이라는 방법을 택하기 전에 동생에게 애정을 갖고 먹는 약, 바르는 약 골고루 챙겨가며 신경을 썼더라면 모발 이식까지 해야 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선배들이 "VIP신드롬"에 대해 웃으며 얘기할 때...
난 속으로 그런 신드롬이 어딨나...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동생의 수술을 직접 내손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보니 비웃던 선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동생은 형이 직접 수술을 하는데도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는지 며칠 고민하며 수술 후 잘못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남아있던 머리가 조금 더 빠지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겉으로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고 돌아섰지만 동생의 휑~ 하니 드러난 머리에 모발 이식을 하면서 난 차라리 다른 의사에게 수술 받으라고 할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다.
집도의에게는 냉철한 이성만이 필요하다..
그 외에 감정이나 기타 감상적인 기분은 용납되지도 않고 용납해서도 안 된다..
비록 그것이 비교적 생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모발 이식 수술이라 해도 근본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불안했던 동생은 몇 시간 후 안정을 되찾았고 모발 이식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제 동생에게 더운 날 모자는 필요 없는 악세서리가 되었다.

동생의 모발 수술 후 얻은 삶의 지혜 하나...
"환자나 가족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세심한 의사가 되자"

형이 수술하는데도 그렇게 불안해하는데 전혀 모르는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수많은 환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물어도 물어도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궁금증과 불안감...
환자나 보호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는 일...
어쩌면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아닌가 싶다...
거울을 보며 입술이 귀에 걸리도록 "스마일" 하며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세뇌 시킨다...

"친절, 세심, 다정"